“KYC 권고안 현실성 없다. 거래소 문닫으란 말인가”

암호화폐 거래소에 고객신원확인(KYC, know-your-customers) 관련 정보를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거래 당사자에게 보내라는 요구는 지나칠뿐더러 현실성도 떨어진다.

블록체인 분석 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Financial Action Task Force)에 보낸 공개서한을 한 줄로 요약하면 위와 같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는 자금세탁을 비롯한 금융범죄 예방을 목표로 설립된 국제기구다.

앞서 지난 2월 FATF는 각국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를 좀 더 효과적으로 감독해 자금세탁 범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담은 권고안 초안을 냈다. 체이널리시스는 이에 대해 권고안을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FATF의 표현을 빌리면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업체)가 제대로 영업을 못 하고 폐쇄하는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암호화폐 업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법 행위를 감시하고 예방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고안의 내용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7조 b항으로, FATF는 각국 정부에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각국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거래 당사자의 신원 정보, 암호화폐를 전송할 경우 수령자의 정보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꾸준히 감독해야 한다. 거래소들은 규제 당국이 요구할 경우 해당 정보를 즉각 제공해야 한다.”

FATF는 이 조항이 잠재적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조항이라면서, 특히 이 조항에 대한 여론을 수렴해 최종 권고안 작성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체이널리시스는 특히 위의 7조 b항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체이널리시스의 COO 조나단 레빈과 글로벌 정책을 총괄하는 제시 스피로는 지난 8일 공개서한을 통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암호화폐 수령자의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암호화폐를 받는 쪽이 반드시 암호화폐 거래소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누군가의 개인 지갑으로 전송될 수도 있고, 아니면 명확한 신원을 규정하기 어려운 곳으로 보내질 때도 얼마든지 있다. 암호화폐를 비롯한 가상 자산(virtual assets)이라는 것이 원래 거래 당사자의 신원을 낱낱이 공개하지 않고도 가치를 편리하게 옮길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체이널리시스는 이런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암호화폐 거래소에 일괄적으로 고객신원확인을 요구하면 거래소는 규정을 어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레빈과 스피로는 현재 FATF 요구대로 거래자 신원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결국 지킬 수 없는 법을 강제하다가 거래소가 폐쇄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도 블록체인 거래의 기본 속성을 바꿔야 하는 사안으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체이널리시스는 덧붙였다.

“현재 영업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는 자금세탁이나 금융 범죄를 예방하고 단속하는 사법 당국에 아주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거래소에 지키기 너무 어려운 신원 확인과 고객 정보 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암호화폐 거래소를 움츠러들게 하는 일이다. 거래소들은 자연히 탈중앙화된 P2P 거래를 줄이고, 기존 금융기관과 점점 더 다를 바 없는 중앙화된 거래만 취급하려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의 투명성은 낮아질 것이다. 사법 당국의 전략적 동반자가 힘을 잃는 셈이다.”

대안은?

레빈과 스피로는 블록체인 자체의 투명성이 곧 기술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거래소들이 블록체인에 기록된 거래 데이터와 정보를 이용해 거래의 위험도를 측정하고 감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이널리시스는 불법 행위를 막을 방법으로, 거래소가 거래 당사자인 고객의 정보를 확인해 자체적으로 저장한 다음, 의심스러운 거래나 특정 거래 당사자의 정보를 사법 당국과 규제 기관, 은행 등에 제공하는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미 체이널리시스는 블록체인에 기록된 데이터를 이용해 불법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암호화폐 지갑 및 거래 당사자를 찾아내는 조사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또한, 체이널리시스는 암호화폐 거래소 고객이 ‘불법 행위 연루 블랙리스트’ 주소와는 암호화폐를 거래하지 않도록 자동으로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동시에 암호화폐를 수령하는 거래소도 의심스러운 주소로 자금이 전송될 경우 이를 서로 알리고 당국에 신고할 수 있다.

FATF는 여론을 반영해 오는 6월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권고안은 발표되는 즉시 효력을 지닌다. FATF가 정한 7조 b항에 대한 여론 수렴 기간은 지난 11일까지였다. 마감을 거의 눈앞에 두고 발표한 체이널리시스의 공개서한이 FATF에 제대로 접수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Nikhilesh De <저작권자(C)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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