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세탁방지 규정, 암호화폐 활성화시킨다. 결국에는”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오줌세’로 거둬들인 돈을 가리켜 “돈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percunia non olet)”고 말했다. 돈의 가치가 그 출처로 인해서 훼손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규제 기관들은 자금과 출처를 분리하는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고심해 왔다.

테러 공격의 위협과 강력한 범죄 카르텔이 성행하는 가운데 전 세계에서 디지털 화폐의 유통이 점점 더 가속화되면서 각국 정부와 초국가 조직들이 암호화폐에 관한 규정과 지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규제기관들은 암호화폐의 사용이 늘어나면 불법 자금의 흐름을 막기는 훨씬 더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했다.

유럽 전역에 적용된 자금세탁방지 지침(anti-money laundering directive, AMLD5)으로 인해 전 세계 암호화폐 기업들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또한, 유럽 외 국가들도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강화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고심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규제로 인해 사업 비용이 오르고, 프라이버시 수준은 낮아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규제 기관들은 여전히 암호화폐 기술의 작동 방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규제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암호화폐 산업의 발전을 장려할 가능성도 있다.

자리를 잡아가는 규제

먼저 자금세탁방지 규정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6월, 유럽연합 의회와 유럽 이사회는 자금세탁방지 지침을 제정하고 보완했다. AMLD5로 알려진 이 지침은 2020년 1월에 발효될 예정이다.

지침이 발효되면 유럽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모든 암호화폐 거래소와 자산을 맡아 보관하는 수탁 기관들은 엄격한 고객신원확인(KYC) 절차를 도입하고 현지 규제 기관에 등록해야 한다. 또한, 거래를 감시하며 의심스러운 행위를 보고할 의무도 갖게 된다.

국세청 등 국가 기관은 관련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 사용자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불법 자금 송금에 대한 우려는 전 세계 사법 당국 모두의 고민이다. 지난주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렉스(Bittrex)가 뉴욕주 금융서비스국(NYDFS)으로부터 비트라이선스를 거절당한 가장 큰 이유도 고객신원확인과 자금세탁방지 규정, 즉 KYC와 AML 두 개에서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난해 12월에는 G20 지도자들이 암호화폐 자산에 관한 포괄적인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도입하기로 했다. 또 자금세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9년 설립된 정부 간 기구인 자금세탁방지기구(Financial Action Task Force, FATF)가 오는 6월 세부 지침을 마련해 세계 각지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적용할 계획이다.

최대의 적은 두려움

FATF는 지난 2월 규정 초안을 공개했다. 지난주 암호화폐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는 암호화폐 거래에서 암호화폐를 받는 수령자가 누구인지 늘 정확히 알 수 없고, 자금이 거래소 지갑으로 가는지 개인의 지갑으로 가는지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FATF의 규정이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2년 초까지 암호화폐 보유자들의 자체 보고, 회원국의 사용자 신원정보 및 지갑 주소 보유와 관련한 수정안을 낼 예정이다. 그러나 많은 반발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규제 당국의) 관리와 감독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러한 조치가 암호화폐의 본령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암호화폐는 중앙 당국의 통제와 검열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또 이번 조치로 거래소의 자금이 AMLD5의 규정을 받지 않는 상대적으로 투명성이 낮은 거래소나 암호화폐 간 거래소들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업들에도 위험이 따른다. 모든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운영 비용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고 의무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면 시장 인프라의 전문화와 성장 자체가 둔화할 수 있다.

독보다는 득?

제기된 우려는 모두 일리가 있지만, AML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전반적으로 암호화폐 분야에 독보다는 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AMLD5는 최초로 가상화폐의 “공식적인” 정의를 다음과 같이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중앙은행이나 공공 당국이 발행하거나 보장하지 않고, 법적으로 확립된 화폐에 귀속되지 않으며 법적으로 화폐나 돈의 지위를 가지지 않지만, 교환 수단으로 자연인이나 법인이 전용하고 전자식으로 양도, 저장, 거래가 가능한 디지털 방식의 가치 표현.”

위의 공식적인 정의는 기업가나 변호사에게는 혁신을 끌어낼 발판을 제공하고, 규제 기관에는 더 자세한 정의와 기준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수 있다.

또한, 암호화폐 거래소를 향한 은행들의 신뢰가 높아지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다. 자금세탁에 관한 금융기관의 우려 때문에 많은 암호화폐 기업은 은행에 계좌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사라지면 기존의 은행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프라가 성장하고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암호화폐 산업의 평판이 좋아질 뿐 아니라 유동성이 강화되고 시장 가격의 변동성도 줄어들 것이다.

궁극적으로 전통적인 금융 기관들이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거래와 투자 용도로 암호화폐에 대한 수요도 자연히 늘어날 것이다.

위기는 기회

암호화폐의 유동성이 증가하면 가격이 상승하는 한편, 추적 목적으로 기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기반 기술에 대한 관심도 증대될 것이다.

체이널리시스가 FATF에 대한 의견에서 밝혔듯 블록체인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디지털 법정화폐보다 암호화폐를 사용할 때 자금 세탁이 더 어려워진다. 또한, 프라이버시 관련법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이 사법 기관과 협업할 수도 있다.

다른 국가에 있는 시장 참여자들과 지갑 주소를 공유하는 것은 개인 식별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는 다르며 유럽의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하지도 않는다. 사법 당국이 의심스러운 활동을 감시하고 조사하기는 더 쉬워질 것이고, 동시에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도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에 보존된 거래 기록을 통해 데이터의 완결성이 강화되고 조작이나 실수로부터 증거를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검찰은 법정 화폐보다 훨씬 더 추적이 용이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정교한 분석 기법이 생겨나면 더 전체적인 패턴을 활용해서 감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예방 전략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규제 기관들이 암호화폐를 “더 깨끗한” 선택지로 보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그러면 규제기관은 암호화폐 사용을 금지하기보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송금을 위해 암호화폐를 채택하도록 권고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공식적인 지원을 통해 화폐 혁신이 일어날 수 있고, 심지어는 중앙은행이 나서서 은행 업계의 변화를 이끌어 나갈 수도 있다.

가장 큰 위협은 가장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Noelle Acheson <저작권자(C)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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