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소멸을 바라지만, 리브라는 지지한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암호화폐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고 앞뒤 논리가 맞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를 생각해보면,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이 지난주 페이스북 리브라 프로젝트가 백서를 공개하자마자 사실상 곧바로 의견을 표명한 것이 얼마나 이례적으로 빠른 대응이었는지 알 수 있다.

맥신 워터스 위원장은 의회가 청문회를 열고 페이스북이 내놓겠다는 리브라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할 때까지 리브라 프로젝트를 중단해달라고 긴급히 요청했다. 유럽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정치권이 리브라를 어떻게 규제하기 위해 무언가를 요구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리브라가 완전한 탈중앙화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달리 리브라 프로젝트는 의원이나 정치인, 관료들이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들을 압박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법원으로 소환할 수도 있다. 당장 페이스북이 리브라 프로젝트를 위해 세운 자회사 칼리브라(Calibra)의 대표 데이비드 마커스부터 소환할지도 모른다. 물론 워싱턴이 불러내려는 최종 목표는 페이스북이 될 것이다. 결국에는 마크 저커버그가 리브라와 페이스북 암호화폐의 모든 것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리브라가 아니라 비트코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의회 의장이나 소위원회 위원장이 비트코인 개발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당장 책임자를 찾는 일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비트코인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백만 명의 개발자, 채굴자, 사용자가 참여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인데, 누구를 소환해서 책임을 지라고 압박할 수 있을까?

이것이 페이스북과 비트코인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페이스북은 결국에는 대표 한 명이 모든 책임은 아니더라도 분명한 책임을 지는 프로젝트이고, 비트코인은 리더가 없이 거버넌스가 분산돼 있다. 심지어 비트코인을 만든 사람(혹은 알고리듬)의 신원이 밝혀진 적도 없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는 중앙 권력의 검열에 저항할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누군가 나서서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을 지면, 외부 집단(정책 입안자, 은행가, 규제 당국, 주주 등)이 대표자를 통해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승인받은 이만 노드로 참여할 수 있는 허가형 블록체인 모델은 이론적으로 원장을 변경하거나 검열하려는 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외부 집단이 원장이나 소프트웨어를 변경할 수 있다면, 리브라 플랫폼은 규제 당국의 규제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혁신을 위한 탈중앙화된 환경을 구축할 수 없다.

한 가지만 확실히 해 두자. 리브라의 설계자들은 페이스북과 리브라 프로젝트를 분리할 방법에 관해 이미 많은 고민을 했다. 리브라 프로젝트팀은 탈중앙화를 약속하며 코드를 오픈소스 라이선스로 공개했고, 스위스에 위치한 독립 재단에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이양했다. 27명의 외부 파트너를 영입해 리브라연합을 꾸렸고, 페이스북은 연합과 더불어 네트워크에 허가형 노드로 참여한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관리자의 승인이 필요없는 개방형 모델로 전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비록 페이스북에서 파생된 프로젝트지만, 리브라도 다 계획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리브라는 페이스북의 직접적인 입김이 닿는 곳에 있고, 앞으로도 한동안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페이스북의 기업문화

당연한 얘기지만, 마커스와 리브라 프로젝트 팀에 급여를 지급하는 건 페이스북이다. 또한, 리브라 프로토콜의 소스 코드는 현재 오픈소스지만, 코드 자체는 페이스북 내에서 개발됐다. 따라서 프로젝트 관리자와 프로그래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페이스북의 조직 문화가 리브라의 설계 목표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문제는 페이스북의 기업 문화가 해롭다는 사실이다. 페이스북의 감시 자본주의 모델은 사용자를 정보 조작의 희생양으로 만들었고, 저널리즘의 가치를 돌이킬 수 없이 훼손했으며,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

페이스북이 새로운 화폐와 결제 모델을 만들겠다고 나서자 모두가 놀란 것도 이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격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 경영대학원의 케빈 워바크 교수는 이번 주 뉴욕타임스에 쓴 기고문에서, 리브라는 페이스북이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탈중앙화 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해도 프로젝트는 특히 초기 단계에서 페이스북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때 과거 페이스북이 저지른 씻을 수 없는 과오는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페이스북이 아닌 리브라를 지지하자

그러나 이 모든 우려에도 나는 리브라를 지지한다. (주: 나는 페이스북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페이스북과 리브라는 별개일 수 있고 별개여야 한다. 사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주장의 요지다.)

리브라는 기존에 은행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지구촌의 20억 명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표를 백서에서 밝혔다. 원대하고 고귀한 목표이고, 현명하게 첫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은행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20억 명을 세계 경제에 편입시키면 나타날 결과는 그야말로 엄청날 것이다.

솔직히 터놓고 말해보자. 비트코인은 금융 포용성을 강화한다는 소기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8천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 송금 시장에서 비트코인과 다른 암호화폐의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하다.

물론 오프체인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확장성 문제를 해결해 대규모 거래를 처리할 수 있게 되고, 스테이블코인이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암호화 솔루션이 보안과 암호화폐 지갑 사용 경험을 개선한다면 비트코인의 활용도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이디어보다 행동이다.

결국 우리는 P2P 결제만으로는 비트코인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비트코인을 투자 대상으로 보고 쓰지는 않고 보유만 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결제용 암호화폐들도 송금 시장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따라서 국제 결제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가격 변동성이 낮은 국제적인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주요 법정화폐가 가치를 뒷받침하고, 대형 테크기업과 금융기업 28곳이 보유한 풍부한 프로그래밍과 마케팅 자원을 통해 개발한 코인은 큰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다. 또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왓츠앱의 사용자 수를 모두 합하면 지갑 개수만 40억 개에 달한다. 별도로 구축하느라 애쓸 필요도 없이 곧바로 글로벌 네트워크 효과가 생겨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완전 개방형 블록체인을 대신하기 위해 리브라가 허가형 프라이빗 네트워크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초기의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마케팅, 규제 당국과의 소통 등 여러 난제를 헤쳐나가려면 대기업의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픈소스 블록체인 커뮤니티는 일관성 있게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어렵지만, 리브라는 중앙화의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는 원래 중앙화 프로젝트의 장점이기도 하다.

리브라는 프로젝트가 점차 성장하면 컨소시엄을 확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공조의 효율은 낮아질지 모르지만, 비정부 기관과 은행, 노조, 연기금 등이 합류하게 되면 다양성은 높아지고 부패 위험은 내려간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검열에 저항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는 어떤 영향이?

나는 리브라의 성공이 비트코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이 리브라 프로젝트를 발표한 후 비트코인 가격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면 많은 이들이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이유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비트코인은 정치나 기관의 위험에서 벗어나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헤징 자산의 역할을 한다. 만약 리브라가 성공해 수십억 명이 디지털 결제 지갑을 사용하게 된다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의 입지는 더 공고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리브라는 페이스북에서 시작된 허가형 시스템이기 때문에 정치적 위험이 따른다는 인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비트코인은 리브라의 대안이 된다.

주요 통화가 뒷받침하는 리브라 토큰은 서클(Circle), 코인베이스(Coinbase), 제미니(Gemini)의 스테이블코인 GUSD와 팩소스(Paxos)의 PAX로 이루어진 결제 네트워크 센터(CENTRE)의 US달러코인(USDC) 같은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리브라가 다른 토큰에 혜택을 줄 수도 있다. 인도를 예로 들어보자. 새로운 통화가 생겨나면 인도에서는 현지 통화 수요를 흡수하는 새 통화의 진입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 달러는 인도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달러를 받아들이는 데는 거부감이 덜할 수 있다. 사용자들도 여러 통화를 혼합한 토큰보다는 하나의 통화에 고정된 토큰을 보유하고 싶어 할 수 있다. 또한 중앙화 통제에 관한 우려로 인해 개방형 블록체인에서 개발된 토큰들이 더 각광받을 수 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되든 돈의 흐름은 쉽게 막을 수 없다. 일일 해외 거래량은 6조 달러에 이른다. 다양한 모델과 서로 다른 시스템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시장이다.

우선순위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

리브라의 성패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리브라를 비롯한 다른 경쟁 프로젝트들이 기존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모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금융 소외가 가난의 악순환을 낳고, 불평등이 테러와 전쟁을 낳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기술이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해도 정책이 기술을 뒷받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워터스 위원장과 유럽의 정치인들은 모두 프라이빗 거래 시스템이 법정화폐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데 초점을 맞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리브라는 화폐를 대체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닌데도 국가의 화폐 통제권이 약화될지 모른다는 인식이 두려움을 낳고 리브라 프로젝트를 전면 금지해버릴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USDC나 GUSD, PAX, DAI 등 다른 스테이블코인이나 결제 코인 프로젝트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국제 자금세탁방지기구(FATF, Financial Action Task Force)의 새로운 암호화폐 규제 표준도 금융 포용성을 높이려는 리브라의 목표를 가로막을 수 있다. 만약 이번에 발표된 규제 표준의 최종안이 그대로 비준되면, 은행과 같은 수준으로 고객의 신원을 파악하지 않는 한, 암호화폐 거래는 당국이 언제든지 금지하고 거래를 무효화할 수 있게 된다.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까지 포용하겠다는 목표를 가로막는 실질적 장벽인 셈이다.

리브라 프로젝트에는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리브라의 대표들은 적어도 현재 저커버그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규제기관에서 이 사실을 이용해 공격해올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이 개방된 국제 금융 거래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이해하기를 바란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 리브라와 같은 결제 분야 기업도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자고 제안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우리는 기업의 권력을 늘 경계해야 한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너무나 쉽게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지금 어떤 위험 앞에 서 있는지 알 수 있다.

페이스북이 아니라 다른 기업이 리브라 프로젝트를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시작해버렸고, 이 프로젝트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걸려있다.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을 철저히 감시해 독점을 막고 책임을 다하게 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들이 전 세계 모든 이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개방된 시스템에서 경쟁하고 혁신하도록 장려하는 현명한 규제를 마련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Michael J Casey <저작권자(C)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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