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LD5 시행에 유럽 암호화폐 기업들 “비용 증가”

유럽의 암호화폐 기업들이 엄격한 새 규제를 맞닥뜨렸다.

지난 10일 유럽연합 28개 회원국 전역에 제5차 자금세탁방지지침(AMLD5)이 적용됐다. 새로운 규정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와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 제공자 등 관련 기업들은 당국에 등록해야 하는 것은 물론 고객신원확인(KYC)과 자금세탁방지(AML) 등 관련 규정을 더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AMLD5는 고객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하면 이를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강화했으며, 금융정보원과 사법 기관에 규제를 집행하고 강제할 수 있는 더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AMLD5는 암호화폐 업계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규제를 지키는 데 드는 비용이 커져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특히 부담을 안게 됐다. 당장 작은 기업들이 폐업하거나 합병하게 될 수도 있다.

“이미 초기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일부 기업의 폐업과 합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암호화폐 업계 전체가 비용 증가에 대처하는 차원에서 M&A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 시안 존스, 엑스레그 컨설팅(xReg Consulting) 이사

네덜란드의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소 데리비트(Deribit)는 이미 지난 9일 AMLD5가 “대부분 거래자에게 너무 가혹한 규제 및 비용 장벽을 세운다”며, 회사를 파나마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 회원국 안에서도 AMLD5를 시행하고 운영하는 방안이 완전히 조율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다만 엄격하면서도 분명한 규제를 적용해 불확실성이 낮아지면, 암호화폐를 향한 유럽 금융기관의 신뢰도가 장기적으로 올라갈 거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은행들은 암호화폐 기업들에 더 흔쾌히 서비스를 제공해줄 것이고, 암호화폐 기업들은 기관투자자로부터 더 많은 자본을 유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암호화폐를 전통적인 금융의 수준으로 맞추고자 하는 노력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암호화폐 업계는 이를 깨닫지 못할 수 있지만, 암호화폐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일부가 됐다.” – 시안 존스

복잡한 암호화폐

28개 유럽연합 회원국이 각각 법령을 제정해 적용하는 일은 대단히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 될 것이다. 현재 전통적인 금융에서 인정되는 규범이 그대로 암호화폐 세계에 적용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유럽 국가의 전자화폐(emoney) 라이선스는 다른 유럽 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암호화폐와 관련된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감시하고 규제를 집행하는 체계는 국가마다 다르다.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의 규제, 사법 체계를 통용할 수 없다.

암호화폐 기업들이 가입된 단체 글로벌 디지털 파이낸스(Global Digital Finance)의 자금세탁방지 작업반장 말콤 라이트는 그래서 AMLD5에 따른 등록 및 허가 절차가 더 복잡해졌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영국 기업들은 브렉시트라는 변수까지 해결해야 한다.

디지털 자산을 위한 기관투자자 인프라를 제공하는 홍콩 기업 디지넥스(Diginex)의 최고준법감시인(CCO)이기도 한 라이트는 기업들이 단순히 허가를 받거나 완전히 새로운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할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런 절차도 밟지 않아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업계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가상 자산 상품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유럽연합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려면 더 조율된 접근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영국 암호화폐 기업들은 영국 금융감독청(FCA)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비에 관한 의견 청취 절차를 통해 등록비는 5000파운드(약 753만 원)로 책정되었고, 연 수수료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기업들은 오는 10월 20일까지 등록 절차를 완료해야 한다.

국제 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영향

AMLD5는 수년 전부터 계획된 규제다. 국제 자금세탁방지기구가 2018년 10월에 처음 발표하고, 지난해 6월에 개정한 규제 표준 권고안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대체되고 연기됐다고 볼 수 있다.

AMLD5는 현금으로 암호화폐를 사거나 암호화폐를 현금화하는 거래에 한해 적용되지만, FATF가 39개 회원국에 공표한 규제 표준안은 암호화폐를 암호화폐로 교환하는 거래에도 적용된다.

무엇보다 FATF의 지침은 전통적인 금융 거래에 적용되던 여행 규칙(travel rule)을 암호화폐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존스는 영국을 예로 들면서 “일부 회원국들은 이제 AMLD5를 넘어 더 포괄적인 FATF 요건을 추가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에서는 관련 사건이 유럽연합의 느린 법령 제정 절차보다 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FATF의 요건이 암호화폐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이다. 처음에는 유럽연합이 법령 제정에 앞장섰을지 모르겠지만 FATF가 내건 요건들은 이를 넘어서 전 세계의 표준이 될 수 있다.”

비수탁 지갑

한 가지 우려되는 상황은 지나치게 제한적인 AMLD5의 시행이 완전히 탈중앙화된 비수탁 지갑을 제공하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오릭헤링턴앤드서트클리프(Orrick, Herrington and Sutcliffe LLP) 영국 사무소의 핀테크 규제를 총괄하는 재키 하트필드는 영국과 독일이 이러한 규제를 도입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규제가 이더리움 기반 금융 플랫폼인 토큰카드(TokenCard)(최근에 모노리스(Monolith)로 상호를 변경했다)와 암호화폐 결제 카드회사 와이렉스(Wirex)와 같은 기업들을 부적절하게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수탁 기관이 아니다. 이들은 지갑 기능을 제공하지만, 개방된 형태로 제공하기 때문에 지갑에 든 자산에 대한 책임이 없다. 지갑에 대한 통제권이 없는 이런 기업들이 AMLD5 규정을 제대로 지키기란 매우 어렵다.”

영국 금융감독청은 본 기사가 발행되기 전까지 취재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영국 금융감독청이 이런 규제를 제정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클라이언트도 있지만, 아직 그 금융감독청 관계자 누구도 이러한 내용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 이 관계자들이 일단 관련 규제를 마련하고 싶어 하고,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 재키 하트필드

네덜란드의 기한

네덜란드에서는 ‘라이선스’라는 용어의 정의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네덜란드 재무부와 중앙은행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네덜란드의 AMLD5가 암호화폐 기업들에 너무 큰 부담을 지운다고 비판한다.

은행들의 컴플라이언스 컨설턴트인 사이먼 레리벨트는 앞서 “입법자와 업계 간에 심각한 의견 차이” 때문에 지침의 제정이 지연되고 있고, 네덜란드가 제정 기한 1월 10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 법안이 현재 상원에서 논의되고 있고, 논의 과정이 최소 2월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재무부와 중앙은행은 AMLD5의 일반 규칙에 금융감독 법전에 따른 2개 규정을 추가했다. 추가된 규정들은 이른바 포괄 조항(umbrella clause)으로 모든 종류의 조사와 조치를 허용한다. 이는 국무원의 명시적인 조언에 반하고, AMLD5 규정과 정신에도 어긋난다. 재무부는 법령의 실제 성격에 관한 정보를 하원에 잘못 설명했고, 단어를 교묘하게 비틀어 속임수를 썼다. 기존의 ‘라이선스’라는 단어를 ‘등록’으로 교체한 뒤에 해당 지침이 더는 인허가를 뜻하는 라이선스 체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 레리벨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디지털 혁신 대변인은 본 기사가 발행되기 전까지 취재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Ian Allison <저작권자(C)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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