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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ereum Classic

이더리움의 탄생

• 2008 년 비트코인 공개 이후 2013 년까지 사실상 비트코인에 경쟁할 만한 프로젝트가 없어 비트코인이 유일한 암호화폐나 다름없던 시절입니다.

2013 년 당시까지 비트코인은 불법자금 세탁 용도로 남용되면서 가격이 100 달러를 돌파한 뒤 폭등을 거듭하며 1200 달러까지 몸값이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2013 년 10 월, 러시아 태생의 엔지니어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마스터코인' 프로젝트에서 재미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 비탈릭에 의해 처음 고안된 이더리움의 핵심 '스마트 컨트렉트'개념은 단순 암호화폐에 머물던 일반인들의 눈길을 블록체인 기술과 사업으로 돌리도록 전기가 됐습니다. 또 암호화폐를 일상생활에 실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블록체인 사업의 기반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 또한 마스터코인에서 시작된 크라우드펀딩의 변형된 형태 암호화폐공개(ICO)는 이더리움의 성장과 함께 암호화폐 시장에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시장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마스터코인은 2015 년 옴니(OMNI)로 명칭 변경)

이더리움은 기업이 아닙니다. 비영리 재단입니다.

이더리움 재단은 스위스에 위치해 있습니다. 스위스 크립토밸리에는 이더리움재단 외에도 비트코인, 테조스, 한국의 보스 코인, 아이콘 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더리움의 컨셉을 북미 비트코인 컨퍼런스에서 공개한 직후 프로젝트는 유명세를 탔고, 이더리움 프로젝트가 앞으로 구글 같은 영리 기업으로 키울지, 아니면 모질라재단 같은 비영리 재단으로 성장할지 선택하는 투표가 이뤄졌습니다. 결국 창업자 8명이 모두 스위스에 모여 토론한 결과 비탈릭의 최종 결정과 함께 비영리 재단으로 결론이 지어졌습니다.
이더리움의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찰스 호스킨슨, 앤써니 디 이오리오 등 비즈니스 그룹 사람들은 차례로 이더리움을 떠나고 이더리움은 개발자 중심의 프로젝트로 바뀌었습니다.

“In January 2015 we launched the PoC 7 and V met with the guys from IBM and Samsung at CES where they were showing what they’ve built with Ethereum. It was both amazing and encouraging to see a few proof of concepts built in such a short time using Ethereum, even if at the time it was in a crude state.”
(2015년 1월, 이더리움 PoC 7를 런칭했고, 비탈릭은 CES 박람회에서 IBM과 삼성전자를 만나 기업이 이더리움에서 무엇을 만들어나갈수 있을지에 대해 확인했다)

이더리움 클래식

2016년, 다오 프로젝트(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Project)해킹사건이 발생합니다. 다오는 탈중앙화 자동 암호화폐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이더리움 개발팀이 만든 시스템입니다. 다오 프로젝트는 비탈릭까지 참여하며 수천억이 모여 이더리움의 시대를 견인하는 프로젝트였으나, 500억이 넘는 이더리움이 해커에 의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해킹사고 이후 비탈릭을 포함한 이더리움파는 블록체인을 변형해 사고를 없던 일로 하자고 제안합니다. 반면 전통파(클래식)들은 역사적 사실을 바꿀 수 없다고 맞섭니다. 결국 DAO해킹사태 이후 이더리움은 하드포크를 통해 둘로 갈라져 원래 있던 이더리움은 '이더리움 클래식'이 됩니다. 현재 우리가 이더리움이라고 부르는 이더리움은 하드포크 이후의 새로운 코인입니다.

이더리움의 해 그리고 투기과열

2017년은 이더리움의 해였습니다. 비탈릭을 선두로 “개발진” 중심의 프로젝트라는 확신이 커뮤니티 전반으로 퍼지며 리플을 포함, 기타 알트코인과 달리 “안전자산” 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발자 및 투자자 커뮤니티 모두에서 평판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부테린은 가상화폐에 대한 무분별한 투기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는 2017년 12월 27일 트위터에 "가상화폐 이용자가 고급 승용차 구입 등에만 관심이 있으며, 부적절한 농담을 주고받는다…현재 가상화폐 커뮤니티 문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고가 달성

암호화폐 호황기를 맞아 이더리움은 최고가를 달성합니다. 비탈릭이 거듭 SNS와 인터뷰에서 투기세력을 향해 “암호화폐 시장에서 떠날 것이다”라는 직접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한국의 가상화폐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이 기간동안 전 세계 이더리움 거래의 30~40%가 한국에서 발생했고 비트코인 투자 광풍이 일었습니다. 특히 사업성이 확실한 블록체인 기술로 이더리움의 '스마트 컨트렉트'가 알려지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더리움’ 하드포크 드디어 성공, 하지만 기대이하

두 차례 미뤄졌던 이더리움의 하드포크(업그레이드) '콘스탄티노플'이 세차례 시도 끝에 3월 1일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이더리움 개발진은 “이더리움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며 "마지막 남은 하드포크 '세레니티'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더리움의 남은 행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요. 이더리움 초기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온 핵심 인력이 잇달아 커뮤니티를 떠나고 있는데다 하드포크 이후 채굴 수요 감소로 채굴자들의 대거 이탈이 염려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