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걸음] 암호화폐 지갑을 갖고 싶을 날

이구순 느린걸음

전국민이 인터넷뱅킹을 넘어 모바일뱅킹을 쓴다고 하지만, 내가 인터넷뱅킹을 시작한지는 5년 남짓 됐다. 편리하다고는 하지만 이래저래 복잡한게 더 많아 보였다. 산책삼아 사무실 주변 은행에 후딱 다녀오면 되는 것을 굳이 복잡 떨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1년 정도 외국에 나가 살 일이 생겨 매월 생활비를 해결하려면 당장 인터넷뱅킹이 필요해졌다. 그 필요가 내 생활에 인터넷뱅킹을 끼워넣었다.

삼성페이 기능이 탑재된 갤럭시S7가 출시됐을 때 잠깐도 생각않고 냉큼 새 스마트폰을 샀다. 다른 것 다 필요없고 삼성페이가 필요했다. 버스로 출퇴근을 하는데, 한 손에 스마트폰 다른 손에 교통카드, 노트북가방까지 들고 버스에 타다가는 손잡이를 놓쳐 넘어지기 일쑤였다. 한쪽 손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필요가 비싸디 비싼 새 스마트폰을 사게 만들었다.

생활에 새로운 습관 하나를 끼워넣는데 나는 무척 더딘 편이다. 그러나 마냥 새로운 습관을 미룰 수 없게 하는 것이 절실함이다.

블록체인 산업과 기술을 고민하고 기사를 만들기 시작한지 1년이 됐다. 1년새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했고, 투자 위주의 암호화폐 산업은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있다.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달라진 점은 내게 블록체인 사업을 의논하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산업에 기사를 써보겠다고 덤벼든 초짜 부장이 뭘 얼마나 안다고 사업을 의논하겠는가. 그 의논이 얼마나 진지했겠는가. 솔직히 돌아보면 1년전만해도 블록체인은 결국 눈먼 투자금 쉽게 받을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1년이 지난 지금 블록체인 산업계는 많이 진지하고 성숙해졌다. 무조건 기술 원리주의를 내세우지 않는다. 기존 산업에 결합하고 사업모양새가 만들어지도록 탈중앙화를 반발짝 양보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용자가 왜 암호화폐를 써야하는지, 단순한 편리함인지, 그보다 더한 절실함을 터치해줄 수 있는지 블록체인 업체들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1998년 인터넷 도입 초기보다 빠른 속도로 고민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러다 내가 암호화폐 지갑을 만들고 싶을 날이 올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생긴다. 신용카드 수수료를 아낄 수 있고, 매번 인터넷 화면에 개인정보를 적어넣을 때 느끼던 찜찜함을 씻을 수 있고, 단지 정보를 입력했는데 내 지갑에 암호화폐가 쌓이는, 그 암호화폐로 커피를 사 마시는 서비스가 내 습관을 바꿔놓을 날이 1년 안에 올 것 같다. 그래주길 바란다. 더딘 내 습관을 절실함으로 깨 주는 암호화폐 서비스가 나와주길 바란다.

또 그런 서비스가 나오면 정부도 불안의 습관을 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년간 산업계가 실패의 고통을 겪으면서 변화를 거듭한 뒷면에서 정부는 한결핱은 불안의 시선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부동의 자세를 유지해 왔다. 정부가 모험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산업계가 변화하고 도전하는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되지 않을까 싶다.

블록포스트 1년을 지내면서 내가 암호화폐 지갑을 갖고싶어질 날. 산업계의 도전과 새로운 산업에 대한 열망에 정부가 불신의 시선을 거둬주는 날이 올해안에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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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IT만 취재한 기자였고, 현재 블록포스트 취재파트를 이끌고 있다. 신상, 신기술, 신산업에 호기심이 많아 늘 새것을 찾아다닌다. 당연히 블록체인에 강한 호기심과 애정을 키우고 있다. 상대방의 얘기를 신중히 듣고 현실적 언어로 말하는 것이 언론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