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걸음] 시장에 귀 기울이는 정부를 바란다

이구순 느린걸음

드디어 새 달력을 책상 위에 올리고 1월의 첫 장을 폈다. 한달 전부터 새 달력을 넘기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그러면서도 너무 일찍 열면 부정이라도 탈 것 같은 괜한 미련에 오늘에야 2020 이라고 쓰인 달력을 책상에 올린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얘기하는 새해 첫 날이다. 지난해인 어제와는 달리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대감이 차오른다. ‘혁신’이라 쓰고 ‘낯선 것’이라 읽혀지는 신산업 종사자들도 함께 희망을 느끼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해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산업을 떠났다. 떠나는 이들은 한결같이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유를 남겼다. 그도그럴 것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정책의 기준선이 없으니 산업은 시들어갔다. 2년동안 블록체인·암호화폐 정책 기준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무작정 암호화폐, 코인 같은 단어는 금칙어로 내몰았다.

연말에는 뜬금없이 세금폭탄 논란도 터졌다. 기획재정부는 암호화폐에 세금을 매기는 공식을 만들어 올해 하반기 제시하겠다고 일정을 내놨었는데, 국세청은 있지도 않은 공식으로 세금을 매겨버렸다. 어떤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했고, 그 계산방식이 정확하고 공평지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는 당사자에게도 안 가르쳐준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세금을 부과한 국세청 담당자는 암호화폐 거래를 한번이라도 해 봤을까. 이러니 조세저항이 생길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암호화폐에만 유별난 것도 아니다. ‘타다금지법’이라고 불리는 운수사업법도 나왔다. 따지고 보면 정부는 ‘낯선 것’ 자체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동통신 담당기자를 시작할 무렵, 당시에는 이동전화가 기자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금액이어서 휴대폰 없이 이동통신 기사를 썼다. 초기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어느 회사 통화품질이 더 좋은지, 건물 안에서는 통화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같은 기사를 주로 썼었는데, 한 이동통신 회사 임원이 “휴대폰을 써보지도 않고 통화품질은 어떻게 알고 기사를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아 당장 월급을 쪼개 휴대폰을 하나 샀다. 그랬더니 진짜 휴대폰 사용자들이 느끼는 통화품질 차이라는게 무엇인지 깨닫게 됏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옮겨간다고 했을 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 사람 중 하나다. 이유는 하나다. 그곳에는 미처 시장이 옮겨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책은 시장 가운데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사는지, 새로운 물건은 어떤 것이 나왔는지, 요즘 유행은 뭔지 몸으로 체험해야 정책을 만들 수 있다. 정책은 예술작품 처럼 상상으로 만들면 안된다. 시장에서는 익숙한 새 물건을 시장에 나와보지 않은 공무원은 낯설고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정책도 타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왜 암호화폐에, 타다에 열광하는지, 어떤 점을 편리하다고 느끼는지, 왜 그 사업을 하려하는지 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당국자들이 책상위에서만 정책을 만들어 시장에는 쓸 수도 없는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부가 곰곰히 따져봤으면 한다.

새해 첫 날이니 희망을 말한다. 올해는 정부가 시장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한다. 시장의 목소리를 듣고, 시장의 유행을 체험하면서 정책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정책 담당자가 낯설다고 무작정 윽박지르지 않는 정부를 바란다. 낯선 것을 위험하지 않게, 익숙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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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IT만 취재한 기자였고, 현재 블록포스트 취재파트를 이끌고 있다. 신상, 신기술, 신산업에 호기심이 많아 늘 새것을 찾아다닌다. 당연히 블록체인에 강한 호기심과 애정을 키우고 있다. 상대방의 얘기를 신중히 듣고 현실적 언어로 말하는 것이 언론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