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게임 강국’ 한국선 블록체인 게임을 못한다(?)

‘이 앱은 한국에서 이용할 수 없습니다.’

최근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 ‘보라’가 출시한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앱) ‘보라 아일랜드’에서 간단한 게임을 즐기려고 하면 이같은 안내 문구가 나온다. 다른 국가에서는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게임을 즐길 수 없다.

한국에서 ‘보라 아일랜드’의 게임을 즐길 수 없는 이유는 모든 게임물은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의 사전 게임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구글이나 애플, 원스토어와 같은 앱 마켓을 통해 유통되는 게임은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등급을 정한 뒤 서비스할 수 있지만, ‘보라 아일랜드’라는 앱을 통해 유통되는 게임은 반드시 사전에 게임위 심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게임위는 아직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게임의 등급분류 심사 기준을 정하지 못했다. 블록체인 등급분류에 대해 ‘연구중’이라고만 한다. 게임사들이 ‘등급분류를 신청해도 어차피 등급을 내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사실 게임위의 이같은 규정은 PC 패키지게임을 유통하던 시절 만들어진 규정이다. 게임 시장이 패키지게임에서 온라인게임, 그리고 모바일게임으로 진화하면서 이같은 사전 등급분류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를 넘나들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데 등급분류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해외에서 서비스되는(등급분류 심사를 받지 않은) 게임에 한국 이용자가 접속하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지 않나.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전 등급분류 심사 대신 사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국에서 서비스하면 안되는 게임 유형만 정해 놓고 이 유형이 아닌 다른 게임들은 자유롭게 출시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사후 관리를 통해 서비스하면 안되는 유형의 게임이 발견되면 강력하게 제재하면 된다. 이른바 네거티브 규제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법 체계도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것을 나열하는 포지티브 규제로는 빠르게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산업 발전을 제도가 따라잡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그래서 ‘해서는 안되는 것’을 정한 뒤 새로운 실험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실험결과 사회적으로 해가 된다면 ‘해서는 안되는’ 종목에 추가하는 방식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년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8 KPF 디플로마-블록체인 과정에 참여해 유럽에서 열린 블록체인엑스포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암호화폐공개(ICO)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블록체인엑스포에 참가한 기업들도 ICO를 하겠다며 홍보하곤 했다.

전시회 현장에서 ICO를 홍보하던 기업들은 전세계에서 유이하게 중국과 한국에서는 ICO에 참여할 수 없다고 현실을 설명했었다. 전세계에서 공식적으로 ICO를 금지한 나라가 중국과 한국 뿐이었기 때문이다. 1년 전, ICO에 초대받지 못한 한국인들이 이제는 블록체인 게임에도 초대받지 못하고 있다. 1년 전에 유럽에서 느꼈던 씁쓸함은 지금도 그대로다.

우리가 블록체인 게임 심의 문제로 혼란스러워 하는 동안 이미 해외에서는 믹스마블이나 액시인피니티 같은 유력 블록체인 게임 회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트론, 온톨로지, 포르테와 같은 블록체인 게임에 투자하는 프로젝트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초 온라인게임을 개발하고, 아이템 판매라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정립한 자타공인 ‘게임강국’이다. 블록체인 게임에 주목하고 있는 게임 전문가들도 많다. 그런 전문가들이 제도 때문에 해외 기업들과 제대로 경쟁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 먹는 것이다. 하루 빨리 블록체인 게임 심의 관련 제도 개선에 착수해야 하는 이유다.

허준 기자메일 보내기

많이 듣고 바르게 전달하겠습니다.
게임이나 동영상, 웹툰 같은 인터넷 기반 콘텐츠 산업과 콘텐츠 이용자를 모은 플랫폼 산업, 그리고 콘텐츠를 전달하기 위한 기반 기술인 통신산업을 취재했다. 제2의 인터넷이라고 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어떻게 다양한 산업을 혁신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특히 콘텐츠와 플랫폼 분야가 가장 먼저 혁신될 것이라고 믿는다. 기자는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작은 목소리도 귀 기울여서 듣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