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 토큰 발행 가이드라인에 100점을 주지못한 이유는

지난 3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마침내 토큰 발행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암호화폐 토큰을 판매해 투자금을 모으려는 스타트업에 규제 당국이 직접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고, 블록체인 업계 전문가와 변호사들이 앞다투어 SEC의 발표를 환영한 것도 이해할 만한 반응이었다.

규제는 분명할수록 좋다. 기존 암호화폐 관련 규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명확히 그어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줄곧 비판을 받았다. 기업들은 자기가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규정을 어기게 되는 불확실한 상황을 가장 싫어한다. 그러므로 SEC가 불확실성을 줄이는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살펴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핵심적 사안에서 여전히 미흡한 점이 여럿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 가이드라인이 실제 규제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지,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규제의 어느 부분에 유념해 토큰 판매를 계획해야 할지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SEC 기업금융국장 윌리엄 힌만은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 ICO 가이드라인”을 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의 발언 이후 거의 반년이 지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토큰 발행 가이드라인에 대해, 힌먼은 스타트업들이 판매하고자 하는 토큰이 증권으로 분류되는지 스스로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자산은 증권으로 분류되고 어떤 것은 아닌지에 대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자 했다. 즉 어떤 자산이나 토큰이 실제 사용할 목적으로 판매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려 했다. 다만 특정한 요인 하나가 증권으로 분류되는지 여부를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스타트업들은 자산의 특징과 토큰 발행 요건을 전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이번에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사실 토큰을 증권으로 보느냐 마느냐는 파급력이 엄청난 사안이다. 토큰이 증권으로 분류되지 않으려면 규제 당국의 복잡한 규정을 지켜야만 한다. 이를 어기면 증권으로 분류돼 더 까다로운 증권법을 준수해야 한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이번에 발표한 토큰 발행 가이드라인은 좀 더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어야 한다.

“SEC가 처음으로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결과물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실제로 그 결과물이 전보다 나은 기준이라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법이나 규정은 정교하게 다듬은 언어로 치밀하게 따져가며 적용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가이드라인은 비공식적인 참고용으로 쓰기에도 너무 허술한 면이 많다.”

법무법인 칼튼 필즈의 변호사이자, 투자은행인 아테나 블록체인 법무팀의 자문위원이기도 한 앤드루 힌케스의 말이다.

힌케스는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사용한 용어 가운데 ‘적극적인 시장 참여자(active participants, APs)’를 예로 들었다. 넓게 보면 프로젝트를 직접 관장하는 주체부터 홍보 담당자, 후원자, 해당 프로젝트와 기업의 성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삼자까지 누구든 적극적인 시장 참여자로 분류될 수 있다. 기준을 적용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용어임에도 가이드라인은 어디까지가 시장 참여자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시장 참여자의 정의만 보더라도 이번 가이드라인의 용어들이 얼마나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하게 쓰였는지 알 수 있다. 이를 읽는 사람들은 당장 프로젝트 홍보 담당자, 독립적인 투자자, 주주들이 적극적인 시장 참여자의 범주에 포함되는지, 그렇다면 이들의 존재와 역할이 토큰을 증권으로 분류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 할 것이다.”

메사리(Messari)의 디렉터 출신으로 정책 전문가인 캐서린 우는 코인데스크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적극적인 시장 참여자를 분명히 정의하지 않아 실제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여러 방면에서 해석의 여지를 너무 많이 남겨놓다 보면 토큰을 발행하려는 스타트업들이 탈중앙화 가치를 따르는 데도 지장을 받을 수 있다.”

법무법인 코브레 킴(Kobre Kim)의 변호사 제이크 체르빈스키는 적극적인 시장 참여자를 이렇게 폭넓게 해석하면 토큰 발행자가 미래의 이윤을 얻는 행위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SEC가 토큰을 증권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가 발행하는 토큰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B라는 회사의 실적에 따라 미래에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할 경우, A사가 토큰을 판매한 뒤 B사의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 토큰은 증권으로 분류될 수 있다. 현재 A사와 같은 상황에 처한 토큰 프로젝트가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증권 아닌 토큰’ 되나?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도 가이드라인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힌케스는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건을 만족하면 토큰을 증권으로 분류하지 않을지, SEC는 이를 어떻게 심사하고 판단해 시장에 알릴 것인지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가이드라인의 설명이 너무 빈약하다.

비트플라이어(BitFlyer) 미국 지사의 법무·규제팀장 헤일리 레넌은 이번 가이드라인을 토큰 발행과 관련해 암호화폐 업계가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을 큰 줄기에서 정리한 문서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말한다. 벌써 수십 년 된 SEC의 증권 분류 기준을 보완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암호화폐 업계와 토큰 발행자들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지 짚어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기존에 알려진 기준보다 좀 더 확실하고 분명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모든 의문과 궁금증을 풀어줬다고 볼 수는 없다. 가이드라인 9~10쪽의 기타 고려사항 부분을 보면, ‘디지털 자산에는 기존의 호위 테스트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므로 (자산이 증권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더 있다’고 나와 있다.”

블록체인 업계 싱크탱크 코인센터(Coin Center)의 피터 반 발켄버그는 가이드라인의 결론이 특별히 새로울 건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SEC가 이 문제를 좀 더 분명히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토큰을 발행한 스타트업과 개발자들은 규제를 준수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안심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SEC의 규제집행 부문과 사이버 담당 부문을 거쳐 현재 로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필립 무스타키스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SEC가 규제를 집행하는 데 어떻게 활용될지도 관심사라고 말했다. 레넌도 “SEC가 앞으로 이번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규제를 집행하고 강화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궁금증
체르빈스키는 가이드라인에 연방증권법에 관한 언급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토큰 발행자들이나 ICO를 계획하는 이들이라면 궁극적으로 연방 증권법이 암호화폐에 어떻게 적용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진행한 ICO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소관인지에 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고 체르빈스키는 지적했다.

“적어도 이 가이드라인을 숙지하는 것만으로 지금 우리 회사와 ICO 프로젝트가 규제 당국의 방침과 기준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확신할 수 있는 기업은 없어 보인다.”

이 문제는 사실 전에도 지적된 바 있다. SEC의 헤스터 퍼스 위원은 지난달 다른 나라 암호화폐 스타트업이 사업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미국 증권법을 어기게 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SEC가 미국 밖의 스타트업에 미국 증권법을 언제,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 스타트업이라도) 미국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거나 토큰을 판매하는 순간 미국 증권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SEC 내에서도 이렇게 해서 다른 나라 기업에게 규제를 집행한 적이 더러 있는데, 그런 사례를 볼 때마다 나는 동료들에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고 말하곤 했다. 다른 나라, 예를 들어 인도의 한 암호화폐 스타트업이 사업하는 내내 미국 증권법을 어기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았다고 이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나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에서 토큰을 판매하거나 투자 대부분을 받을 생각으로 치밀하게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스타트업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당연히 미국 증권법을 어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퍼스 위원은 말했다.

혁신을 위한 발판? 혁신 가로막는 장애물?
일각에서는 이번 토큰 발행 가이드라인 및 그와 더불어 개별 기업이 SEC로부터 받은 편지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여전히 SEC의 규제 프레임은 혁신을 촉진하기는커녕 혁신 동력을 억압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토큰 발행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같은 날, SEC는 사상 처음으로 토큰 판매를 계획 중인 턴키젯(TurnKey Jet LLC)이라는 전세기 항공 여객 서비스 회사에 무제재 확인서(no-action letter)를 발급했다. 무제재 확인서가 마침내 발급된 건 잘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턴키젯이 1년 가까이 SEC와 수많은 회의를 거쳐 의견을 조율한 끝에 상당히 많은 제약 조건이 달린 무제재 확인서를 받았다는 것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여전히 수많은 규제 아래 놓여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캐서린 우는 무제재 확인서가 발행됐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나도 무제재 확인서가 (다소 실망스러운) 가이드라인과 같은 날 발행되지 않았다면 그저 잘된 일이라고 좋아하고 넘어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볼수록 환호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번 무제재 확인서는 항공 여객 서비스 사업자가 비행 마일리지를 토큰화해도 이는 증권이 아니라고 확인해준 것과 다르지 않다. ICO를 준비하는 많은 프로젝트와는 사실상 다른 종류의 토큰인 만큼 암호화폐 업계 전체에 마침내 봄이 왔다고 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넘어야 할 규제의 벽은 높다.”

워싱턴 D.C.에 있는 블록체인 로비 단체 블록체인 협회(Blockchain Association)의 크리스틴 스미스 회장도 비슷한 우려를 나타냈다. “SEC가 증권법을 암호화폐에 적용하고자 고민하는 모습 자체는 무척 고무적이지만, 이번 토큰 발행 가이드라인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혁신을 이끌고 투자를 촉진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오히려 미국 블록체인 네트워크 성장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체르빈스키 변호사는 긍정적인 측면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호위 테스트를 디지털 자산에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을지에 관해 자세한 설명과 분석을 실었고, 지금까지 SEC가 발표, 공개한 어떤 성명서나 자료보다도 토큰 판매를 폭넓고 분명하게 다룬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르빈스키는 2년여 전에 SEC가 했던 발표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SEC가 DAO 해킹 사태를 조사한 뒤 내놓은 이른바 ‘DAO 리포트’가 디지털 자산을 증권으로 분류하는 기준 역할을 했다. 그러나 DAO 리포트는 암호화폐 토큰에 관해서는 사실 아무런 조사나 분석도 하지 않고, 그저 잠재적인 위험으로 취급한 수준이었다. 적어도 이번 가이드라인에 담긴 규제 프레임워크는 암호화폐 전용 호위 테스트를 상정해 설명해놓고 있다. DAO 리포트보다 훨씬 낫다.”

힌케스도 체르빈스키의 지적에 동의하며, SEC가 무턱대고 암호화폐를 규제하려 들지 않고 관련 기업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려 한다는 건 분명 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규제 당국이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규제 조항을 명확히 다듬고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려 노력하는 모습은 디지털 자산 시장에도 바람직하다. 비록 이번에 발행한 가이드라인이 법적 구속력은 없는 문서라 해도 시장으로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규제가 좀 더 명확하고 혁신을 촉진하는 쪽으로 개선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게 됐다.”

세줄 요약

  • SEC가 새로 펴낸 토큰 발행 가이드라인은 자산이 증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호위 테스트를 암호화폐에 어떻게 적용할지 기본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 하지만 이와 관련해 더 명확하게 설명했어야 하는 내용이 빠져 있어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적극적인 시장참여자의 범주는 토큰이 증권으로 분류되느냐 마느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빠졌다. 미국 밖에 있는 스타트업에 미국 증권법을 어디까지, 얼마나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어떤 요건을 충족하면 토큰이 증권으로 분류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 암호화폐 변호사들, 업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SEC가 뗀 첫걸음을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가이드라인의 여러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Nikhilesh De <저작권자(C)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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